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헤르메스 #2

ZionLee 2017. 10. 7. 18:03

Publicaton by Reformed Tifo 

헤르메스 #2

이름이 왜 헤르메스지?

흔히 서포터는 열두번째 선수라고 표현한다. 이에 착안하여 그리스 로마 신화의 열두번째 신인 헤르메스를 부천의 열두번째 선수인 우리 서포터즈의 이름으로 사용하게 되었다.

옛 헤르메스 페이지(부천FC1995 창단 전)에 올라와 있는 헤르메스 소개글을 한번 보는게 어떤 설명보다 가장 설명이 쉬울 듯 하다.



 

"대한민국 최초의 서포터! 부천FC 서포터!

 

부천FC 서포터는 1995년 동대문운동장 단관을 시작한 하이텔 축구동호회내에서 

유공 코끼리 축구단을 좋아하는 팬들이 모여 조직한 '유공 코끼리 서포터'를 모태로 하는 명실공히 대한민국 최초의 서포터입니다.

 

이후 1996년 유공 축구단은 경기도 부천시를 연고지로 확정 지으며 클럽명을 '부천 유공 코끼리 축구단'으로 변경하였습니다.

이에 1997년 서포터 조직도 부천시를 연고지로 하는 '부천 유공 코끼리' 서포터로 개편했으며 1997년 12월 12일 서포터즈는 12번째 선수라는 것에서 착안하여 그리스 신화의 12번째 신의 이름인 '헤르메스'로 서포터의 이름을 확정 하였습니다.

 

1997년 축구단의 모기업의 명칭이 변경되면서 축구단의 명칭도 '부천 유공 코끼리'에서 '부천 SK FC'로 변경되는 일이 있었지만 '헤르메스'는 "우리가 지지하는 것은 모기업의 축구단이 아닌 '부천'의 축구단"임을 강조하며 모든 응원가와 구호에서 모기업의 명칭을 제외한 '부천FC'를 사용하는 당시로써는 파격적인 행동을 하였습니다.

이 사건은 당시에는 논란이 적지 않았으나 연고지의 개념을 그만큼 중요하게 생각하여 내린 결정이었고, 지금까지도 많은 타 서포터 집단에 영향을 미치고 있습니다.

 

 

헤르메스 첫 지방 원정 응원 - '98 아디다스 코리아컵 (1998년 3월 21일 광양)

 

 

당시 연고지인 부천엔 경기를 치를 수 있는 경기장이 없어 부천과 인접한 서울 서부지역의 목동 경기장을 사용하였으나 초기에는 열약한 교통조건과 연고지역의 축구단이 아니라는 악조건으로 경기장을 찾는 팬들의 발걸음은 적었습니다.

하지만 러시아 신사 '니폼니시'의 화려한 미드필드 플레이를 중심으로 하는 기술 축구와 헤르메스의 화려하고 열정적인 응원으로 점차 경기장을 찾는 팬들의 발걸음이 늘어났고, 부천 지역 뿐만 아니라 인근 서울과 인천지역에도 많은 부천FC의 팬과 서포터들이 생기게 됩니다.

 

 

헤르메스는 대한민국 서포터의 선구자 답게 응원 스타일에서도 기존과 많은 차별을 두었습니다.

1998년 대한민국에선 최초로 유럽의 울트라 문화를 받아들이며 당시로선 충격적인 상대방에 대한 네거티브 응원을 전개하였고, 99년엔 대한민국 최초의 '게이트기', 부천FC의 색인 붉은색과 검정색만을 사용하여 대형 깃발을 제작하는 등의 새로운 응원 문화를 도입하여 타 서포터에도 많은 영향을 끼치게 됩니다.

또한 응원가 'To Be No.1(現 나의 부천 영원히)'은 현재 붉은악마의 '오! 필승 코리아'라는 응원가로 개사돼 사용되며 2002년 월드컵을 계기로 전국민에게 사랑받는 응원가가 되었습니다.

 

 

부천FC와 헤르메스가 많은 변화와 발전을 이룬 목동 경기장이었지만 2001년 연고지인 부천에 부천종합운동장이 개장되며 홈 경기장을 이전하였고 헤르메스도 소모임 체제로의 개편을 통해 본격적인 부천시대를 맞이하여 제 2의 도약을 준비하게 됩니다. 

 

 

대한민국 최초의 유니폼 통천 (2002년)

 

 

그 동안 나의 클럽이 타 지역에서 경기하는 것을 매우 안타깝가 생각하던 부천지역 팬들과 헤르메스는 엄청난 환호와 열기로 부천FC에 아낌없는 성원을 보냈고, 부천FC의 저조한 성적에도 불구하고 2001년 K리그 평균관중 수 1위를 기록함으로써 '부천=축구도시'라는 인식을 전국의 많은 축구팬들에게 인식시켰습니다.

 

 

하지만 2002년 후반기부터 시작된 축구단의 파행적인 운영과 하루가 멀다하고 쏟아지는 단장의 망언, 주전 선수들이 타 팀으로 대거 이적하면서 부천종합운동장을 찾는 팬들의 발걸음은 점점 멀어졌고, 2003년 급기야 모기업인 SK는 축구단 매각이라는 발표로 부천FC 서포터와 팬을 비롯해 전국의 축구팬을 경악하게 하는 사건이 발생하게 됩니다.

 

 

게다가 2003년 헤르메스는 앞으로의 비전과 발전을 위해 헤르메스라는 이름을 과감히 버리고 대한민국에선 누구도 시도하지 못했던 독립 서포터제를 시행하였지만 구단의 파행 운영 등 여러 가지 악재가 겹치며 위기 아닌 위기가 찾아오게 됩니다.

이 후 부천FC는 2003년, 2004년 두시즌에 걸쳐 '2년 연속 최하위', '22경기 연속 무승'이라는 불명예까지 당하며 곤두박질 쳤고 독립 서포터제로 흩어졌던 부천FC 서포터즈(舊헤르메스)는 위기 의식을 공감하고 부천FC와 부천 서포터즈 발전을 위한 새로운 계기를 마련 합니다.

 

 

2005년 부천 서포터즈는 독립 서포터제와 舊소모임제를 적절히 조합하여 다시 한번 예전 부천 서포터즈의 명성과 강력함을 되살리는 정책을 진행하였으며 이러한 부천 서포터즈의 노력에 힘입어 부천FC는 점차 달라진 기량과 성적을 보였으며 자리를 떠났던 부천 지역팬들도 점차 다시 경기장을 채우며 부천FC를 응원하였습니다.

 

 

2005시즌 K리그 후기리그 관중석

 

 

그러나 이런 부활의 희망도 잠시, 2006년 2월 2일 SK축구단은 제주도로의 야반도주식 '연고이전'을 발표하며 부천 서포터즈와 부천 지역팬은 물론 대한민국 모든 축구팬의 엄청난 분노를 샀습니다. 큰 배신감과 분노를 느낀 부천 서포터즈와 지역팬 및 대한민국 서포터즈 비상대책 위원회는 프로축구연맹 건물 앞 시위, SK본사 앞 시위, 경기장내 시위 등의 방법으로 연고이전의 비도덕성과 부당성을 알리기 위해 노렸했고, 2006년 3월 1일 대한민국 대표팀의 A매치 경기에서 붉은악마와 공조해 反 SK시위를 전개하여 많은 축구팬들이 SK의 비도덕적 행동에 대해 인식하고 분노하는 계기를 만들었습니다.

 

 

부천 서포터즈는 비도덕적이고 패륜적인 SK축구단의 연고이전을 절대 용납 할 수 없으며 SK는 대한민국의 모든 축구계에서 영원히 발을 땔 것을 요구 합니다.

부천 서포터즈는 이 요구가 관철 될 때까지 지속적으로 SK의 비도덕적 행위에 대해 알리고 투쟁 할 것입니다.

 

 

현재 부천 서포터즈는 새로운 부천 축구단을 만들기 위한 과정에 모든 힘을 쏟고 있으며 우리의 지역인 부천에 새로운 축구단을 위해 모든 노력을 아끼지 않을 것 입니다.

부천 서포터즈는 대한민국 서포터의 출발이며 곧 역사 입니다. 

우리는 우리의 역사와 자존심을 지키기 위해

반드시 K리그로 돌아 갑니다.


결국 돌아왔다. 헤르메스는 이런 서포터다.



헤르메스의 의의

접 클럽을 만든 주체이기에 클럽과 매우 밀접한 관계를 맺고 있다. 타 K리그 클럽들을 보면 클럽이 있기에 서포터가 있지만, 우리는 서포터가 있기에 클럽이 있다. (그렇다고 서포터 선민의식을 가지진말자. 우린 그저 우리의 축구가 보고싶었던거지, 우리가 뭐라도 되려고 클럽이 있는게 아니니깐)

또한 한국 최초의 자발적으로 형성된 서포터이다. 엄밀하게 말하자면 한국 최초의 서포터는 헤르메스보단 그랑블루(현 프렌테 트리콜로)가 가깝다. 그렇지만 이 집단은 사실 삼성구단의 프런트였던 리호승 대리(후엔 사무국장이 됐지. 결국 쫓겨났지만)를 필두로 삼성구단 자체에서 어느 정도 계획하여 만든 집단이다.(물론 후에는 서포터 운영에 당연히 손뗐지) 그에 비교하여 헤르메스는 구단의 계획이 아닌 최초로 팬들이 자발적으로 만든 서포터이다. 

뿐만 아니라 한국에 울트라스 문화를 가져온 그룹이다. 당시 인터넷도 제대로 발전되있지 않고 유럽축구 중계도 거의 없던 시절, 헤르메스는 어떻게든 이탈리아 현지 서포터들의 모습을 연구하여 그들의 울트라스 문화를 가져오려했다.(홍염도 구할 방법을 알지 못할 때는 직접 화학공식을 세우며 제작할 정도였다. 지금 생각해보면 엄청 위험한 방법이긴 하지...) 반면 당시 헤르메스와 K리그 서포터 문화를 주도해가던 그랑블루와 ASU레드 중 그랑블루는 좀더 현실적으로 서포터 문화를 연구해나갈 수 있게 J리그 서포터들과 유럽 울트라스들을 비교 연구하며 그 문화들을 가져왔다.(몇년 전만 해도 수원 서포팅 곡들 중 'Ale'가 '아레'로 표기되던 것이 그 증거 중 하나이다. 뭐 J리그 서포터 문화 또한 일본인들이 이탈리아 서포터들을 표방하여 만들어진 것이기에 일본을 통해 서포터 문화를 가져온 것도 나름 나쁘지는 않은 방법이긴 하다.) 그리고 ASU레드는....솔직히 모르겠다. 진짜 아는게 없다. 우리나라 최초로 홍염을 쓴 것 정도만?


헤르메스의 서포팅 방식

헤르메스는 플로어 탐과 스네어를 이용한 서포팅 방식을 이용하고 있다. 매우 간단하면서도 최대의 효율을 만들어내는 악기 구성이며(네덜란드의 AFC 아약스 서포터인 VAK410이 이 구성을 사용하는 가장 대표적인 서포터이다.) 사람이 매우 심각하게 적지 않은 이상 적든 보통이든 많든 강력하면서도 신나는 분위기를 가장 자연스럽게 만든다. 아무래도 탐, 스네어만을 이용한 구성이기에 서포팅곡의 16비트를 넘어서까지 박자를 쪼개는 것을 어렵기에 전체적인 서포팅곡이 빠르고 직선적인 편이다.(실제로 같은 음을 이용한 타 클럽들의 서포팅곡들과 비교하면 박자가 진짜 빠르다는 것을 느낄 수 있다.)


서포팅곡

여길 누르면 된다.

위 링크를 들어가면 다 나와있다. (누락 되어있는 곡들도 있긴 하다.)


그렇다면 우리가 그렇게 외치고 표방하는 '울트라스'란 무엇일까. 다음 호에서는 '울트라스'에 대해서 알아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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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formed Tifo와 함께하고 싶다고? 그렇다면 Reformed Tifo 페이스북 페이지(링크)에 메시지를 보내주면 된다. 그리고 경기장에서 함께하면 된다.(코어에서 검은 옷 입고 있는 젋은 사람들이 보이면 분명 우리 멤버일 가능성이 크다.) 몇살이든, 성별이 어떻든, 사는 곳이 어디든 상관 없다. 자격요건은 그저 우리와 같은 생각을 가지고 부천이라는 클럽을 지지할 의향이 있느 이것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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